툇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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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아이들을 엄하게 꾸짖었다.
공동생활 중 지나친 개인주의와 감사의 부재에서 비롯된 꾸짖음이었다.
그러고선 맘이 좋지 않았는데 잘 시간이 되자 또다시 아이들이 교사방앞에 하나둘 모여들더니
주절주절 자기 얘길 늘어놓고 웃고 장난을 한다.
아이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근래에 읽은 책 내용이 떠올랐다.
한국의 건축 문화 중에 좋은 게 뭔지 아십니까? 바로 튓마루입니다.
방과 마당 사이에 있는 좁은 마루, 튓마루 말입니다.
사람들이 남의 집에 오자마자 신발 벗고 안으로 들어가기 불편하잖아요.
그러니 신을 신은 채로 이 툇마루에 앉아서 대화를 하다가 마음이 열리면
신을 벗고 방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사람 마음에도 툇마루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누군가 찾아왔을 때 바로 들어오라고 하지 않아도 되고,
상대방도 바로 들어오기 어려울 테니 한 템포 쉬었다가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번 돌아보세요. 내 마음에 툇마루가 있는지, 없는지. 나 자신이 쉴 만한 공간이 있는지,
그리고 손님이 찾아왔을 때 잠시 앉아 쉬었다 갈 공간이 있는지.
"더우니까 얼른 들어와. 추우니까 얼른 들어와"상대방을 배려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바로 들어오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거에요.
당신의 아이가, 당신의 연인이, 배우자가, 동료가 당신 마음 앞에서 머뭇대고 있다면 기다려줘야 합니다.
그들에게도 툇마루에 앉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 마음에도 공간이 있고,
편하게 쉴 만한 의자 한두개쯤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당에는 툇마루를 놓아두고요.
-당신은 아무 일 없던 사람보다 강합니다, 김창옥
곰곰히 생각해본다. 며칠전 아이들을 꾸짖던 날에 내 마음에 그런 여유가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하고.
그리고 감사하다. 그럼에도 오늘도 어김없이 모여든 참새떼들에게..
가만히 앉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한시간은 금방 지나가버린다.
아쉽지만 너무 늦은 시간 탓에 내일을 기약하며 "그만 자! 어서 가!"하고 휘휘 쫓는다.
아이들이 다 들어가고 나면 마무리 업무를 하고 나도 이불에 들어간다.
그리고 다시 생각은 이어진다. 아이들과 나눴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생각하면서 왠지 웃음이 나온다...
감사할뿐이다.. 정말이지 감사하다는 말 밖엔..
이 아이들과 함께 하려면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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